’자기의 이국화(異國化)’를 경계하는 무용인

2016.10.05

’자기의 이국화(異國化)’를 경계하는 무용인
 


임지애는 작가 정신이 뚜렷이 보이는 안무가다. 춤의 재료에 대한 접근 방식이 지적(知的)이다. 오랜 시간의 리서치 작업을 통해 소재가 갖는 역사성이나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는 일은 작품 완성의 대전제가 된다. 그가 만들어낸 춤에서 아름다운 몸짓이나, 질서 있는 무용수의 움직임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감각적인 춤은 그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경계인으로 자처하는 것일까? 임지애 안무는 ’선과 악’, ’남과 여’, ’신과 인간’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올해 서울아트마켓(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 이하 PAMS)의 팸스초이스(PAMS Choice) 선정 작품인 그의 <뉴 몬스터(New Monster)> 역시 그런 시선이 담긴 작품이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식의 기존 인식 틀에 젖은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애매함이 있고 난해하다. 묘한 것은 그런 모호함 속에서 작품이 긴 여운과 잔영(殘影)을 남기고 그것이 관객의 사유와 질문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임지애 안무가를 9월 21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그의 예술관과 <뉴 몬스터> 등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필자와 임지애 안무가 © 이강혁

▲ 필자와 임지애 안무가 © 이강혁

<뉴 몬스터>가 팸스초이스 작품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합니다. 서울아트마켓을 통해 어떤 성과를 기대하고 있는지요.

그간 <뉴 몬스터>의 재공연 기회를 얻고 싶었는데 마침 팸스초이스 작품으로 뽑히게 되어서 기뻐요. 이 작품이 좀 더 다른 지역의 관객과 문화를 만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뉴 몬스터>는 어떤 작품이며,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2013년 3월 한팩라이징스타 프로그램1)으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처음 발표된 작품입니다. 곧이어 독일에서 공연했었습니다.
작품은 신화적인 요소를 차용해 그 이미지를 뒤틀어 다른 형상으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사람도, 동물도, 성별도 모호한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가만히 보면 신화라는 것이 굉장히 이분법적입니다. 선이 악을 이기는 구조, 남자와 여자, 신과 인간이라는 전형적이고 통념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것이 현대사회에서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분법보다는 중간이라는 지점에 온전히 있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작품 속에서 동물이 나오는데 그게 동물이 아니라 사실은 여자와 남자의 중간이에요. 중간이라는 지점이 매력이 있었고, 모호한 부분들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특별히 관객이라는 대상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익숙한 것들로부터 문제를 생산하고 싶은 욕구가 출발점이자 과정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인 질문에 들어가기 전에 무용인으로서의 자기소개를 해 주면 어떨까요.

무용은 중학교에 다니던 15살에 시작했어요.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하는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늦은 셈이죠. 처음에는 춤을 막 추고 움직이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기 보다는 무용이 가진 형식, 예를 들어 머리 모양, 의상, 춤사위같이 춤이 갖는 독특한 형식에 끌려 그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후 안양예고를 거쳐 경희대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서울예술단에 입단했습니다. 그때까지는 한국무용을 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안애순무용단에 들어가 컨템포러리 무용을 하게 됐습니다. 2011년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의 인터유니버시티 무용 센터(Inter-university Center for Dance Berlin)에서 석사과정(Solo/Dance/Authorship)을 마쳤습니다.

1) 차세대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 한국공연예술센터(2014년 5월 29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통합) 주관.

▲ <뉴몬스터> © 임지애

▲ <뉴 몬스터> © 임지애

<뉴 몬스터>는 독일에서 공연했다고 하는데 현지 반응은 어땠었는지요.

독일 베를린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처음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서 한 작업인데 그 작품으로 독일 무용전문지 탄츠(Tanz) 매거진에 의해 ’2014 주목할 만한 예술가’에 선정됐어요. 처음에는 선정되었는지 몰랐는데 주변에서 얘기해서 알게 됐어요. 제가 한국무용을 쭉 하다 현대무용을 하게 됐는데 현지 사람들에게는 제 춤의 움직임이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전통을 화두로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유럽 사람들은 ’아시아의 전통’이라고 하면 그들의 머릿속에 이미 입력된 이미지가 있거든요. 그런 기대로 극장에 갔는데 그 기대가 완전히 배반당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임지애 안무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성격의 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무용의 난해성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요. 현대무용이 어떤 방식으로 관객과의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저 자신도 현대무용을 배우면서 무척 난해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를린에 5년째 있는데, 그곳은 현대무용계를 읽기가 어려워요. 더구나 처음에는 아주 많이 헷갈렸어요. 지금은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보통 작품을 하면서 관객을 많이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건 관객을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고 제가 진지하게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관객이 같이 반응해준다면 감사한 일이죠.
생각해 보면 작품이라는 것은 작가로부터 발생하는 일련의 생각이 계획을 통해 리서치를 거치고, 또 다른 대상들을 만나면서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입니다. 그런 것을 관객이 극장에서 1-2시간 보고 이해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아요.
요즘 작가들은 작업을 통해 특별히 무슨 주장을 하거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아요. 작품이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수단이 아닌 거죠. 오히려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이 더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어떠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작품을 스스로 개념 무용(Conceptual Dance)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는지요.

사실 개인적으로 춤에서 ’개념’이라는 용어가 아직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해요. 쓸 수 있는 적당한 다른 용어가 없어서 이해를 도우려고 간혹 쓰기는 해요.
주변에 보면 유럽을 통해서 개념 무용의 영향을 받은 무용인들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요. 제가 생각하는 개념 무용은 작품의 스타일이 아니라 작가의 태도와 관련이 있어요. 그러니까 작가가 작품에 대한 낡은 방식의 접근을 거부하고 새롭게 보려는 것, 자신을 안전한 곳에 놓으려 하지 않고 밀어내고 개발하고 그러는 태도죠. 개념 무용의 범주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보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 테두리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왠지 스스로 무덤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최근에는 춤의 소재로서 어떤 문제에 특히 관심이 있나요.

그동안 전통을 화두로 제도적 관습, 통념 따위에 대한 질문을 해왔습니다. 현재는 질문의 방향성을 살짝 틀어 ’전통을 통한 컨템포러리 제동 걸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요즘 공부하는 한국 춤의 역사적 맥락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된 질문들이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전통, 역사, 과거라는 선택된 기억들은 어떻게 현재와 다시 관계 맺는가. 후기 식민지 또는 근대화가 생산해낸 ’자기의 이국화’ 또는 ’타자화’가 동양의 문화를 향해 전형적인 프레임, 상투적 시선을 생산했고 그것이 어떻게 동시대에 문화를 지배하는가. 춤추는 몸은 단지 특정한 문화적 기억이 새겨지는 수동적 대상인가, 아니면 스스로 재구성하고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는 주체인가. 이런 질문들을 이미 선택되어 쓰인 한국춤의 역사적 궤도를 재안무하는 행위로 수행할 계획입니다.  

’자기의 이국화’라는 말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식민지 시대, 서양의 제국주의 시대 이후로 생긴 거라고 할 수 있죠. 그 사람들이 가진 동양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에 자기를 맞추는 겁니다. 무용가 최승희가 미국과 유럽 순회공연을 다닐 때 그쪽 큐레이터들이 자기네가 아는 동양적 이미지를 충족시켜 달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최승희가 귀국 후 "나는 동양의 춤을 오히려 외국에서 수입했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같은 맥락에서 제가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자기의 이국화’입니다. 예술시장에서 종종 이국적 정서를 어필하는 작업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올리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비단 예술가의 문제만은 아니고 그것을 선호하는 큐레이터의 시선 문제이기도 합니다.

▲ 임지애 안무가 © 이강혁

▲ 임지애 안무가 © 이강혁

긴 시간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가까운 장래에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가요.

현재 서울무용센터에서 레지던트 아티스트로 <한국무용사담>이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0월 13일 그 결과물을 쇼케이스 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고요. 11월에는 광주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벌이는 아시아무용단 워크숍에 안무가로 초청돼 8개 아시아 국가 무용수들과 작업을 벌여 작품을 하나 만들게 됩니다.
이 작품 역시 제가 해 왔던 작업의 연장선상에 이뤄지는 겁니다. 여기 참여하는 아시아 무용수들이 대부분 자기네 나라 전통춤을 배운 후 어떤 계기에 서양 춤을 하게 된 친구들이거든요. 분명히 그들에게 테크닉 또는 정신적으로 전통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데 몸의 내부 충돌과 고통이 있었을 거예요. 저도 똑같았거든요. 그들 모두에게 ’자기 이국화’와 ’타자화’의 경험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문제를 작품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공연은 광주에서 11월 19~20일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는 베를린으로 돌아가 내년으로 계획된 신작 <Ah~ Ah Ah>의 리서치 과정 발표를 할 계획입니다.  

기고자 프로필

강일중 (공연 칼럼니스트)
강일중 (공연 칼럼니스트)
공연과인물 편집위원. 연합뉴스에서 뉴욕 특파원, 논설위원 등을 지냈으며 연극과 무용 분야의 작품 리뷰와 기록 글을 다양한 매체에 쓰고 있다. 저서로 『뉴욕 문화가 산책』, 『공연예술축제를 만드는 사람들』등이 있다.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