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성찰로 동시대 유효한 춤을 건네는 안무가 전미숙

2016.09.19

끊임없는 성찰로 동시대 유효한 춤을 건네는 안무가 전미숙
 


전미숙은 자전적 이야기를 작품으로 이끌어내는 예민한 통찰력, 정제된 움직임과 치밀한 무대구성력을 인정받으며 30여 년간 국내외에서 활약해온 안무가이다. 1981년 현대무용 탐(TAM)1)이 창단되면서 안무가와 무용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8년 『세계현대무용사전(International Dictionary of Modern Dance)』에 등재되었고, 같은 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무용가 양성에 힘써왔다. 특히 2010년과 지난해 공연한 〈아모레 아모레 미오〉가 다수의 무용상을 수상하면서 중견 안무가로서의 흔들림 없는 위치를 입증하기도 했다. 

여전히 땀 냄새나는 춤의 기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무의 개별성과 경계를 고민하는 안무가 전미숙에게 올해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의 무대가 주어졌다. 9월 독일의 탄츠메세(Internationale Tanzmesse NRW)의 공식 쇼케이스 선정 작품이기도 한 〈바우(BOW)〉는 이번 팸스초이스를 통해 국내 초연될 예정이다. 인터뷰 내내 자기 성찰의 자세로 동시대성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중견 무용가의 위엄 대신 겸손함이, 천부적 자질 대신 온전한 노력으로 구축한 춤 세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1) 이화여대 무용과 대학원생들에 의해 1980년에 창단. 탐 무용단은 다양한 이념과 주제, 현상들을 그들 작업의 텍스트로 사용하여 춤작업의 다각적 접근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무용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출처: 현대무용단-탐 홈페이지]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1980년대부터 현대 춤 안무가로서 활동해 오셨습니다. 30년 넘는 춤 작업을 축약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난 춤 작업을 돌이켜보면 10년 정도의 주기로 작품성향이 변화했어요. 8~9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은 저의 정체성이나 사회문제에 관한 주제를 많이 다뤘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기존의 불합리한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반골 기질을 내면에 갖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나타났던 것 같아요. 대외적으로 알려졌던 것은 1987년 현대무용 탐의 이름으로 대한민국무용제(현 서울무용제)에 참가했던 〈얼굴찾기〉라는 안무작이었습니다. 주최 측으로부터 연기상을 받았는데 평단은 심사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별도의 심사를 단행했고 저의 안무작을 대상으로 선정해서 이슈가 됐었지요.

초기 작품들은 세태 속의 개인과 집단을 해부하여 당시 사회 분위기를 밀도 높은 무대구성력으로 형상화했던 것 같습니다. 90년대 중반 이후의 작업이 다른 양상을 갖는다면 그 변화에 특별한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걸까요?

영국 런던 컨템포러리 댄스 스쿨(런던현대무용학교, London Contemporary Dance School)에서 수학할 기회가 생겼어요. 이미 10년 넘게 무용계에서 활동하다가 용기 있게 건너간 상황이라 컨템포러리 댄스에 관한 기술적인 뭔가를 얻고 돌아가겠다는 투지도 매우 확고했죠. 영국 생활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무언가를 얻고 배우겠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의 변화인 것이지, 테크닉을 배우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부분이 아니었던 거예요. 영국에서 돌아온 후 작품의 성향도 서정적이고 전보다 자연스러운 느낌의 것으로 바뀌었죠.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흐름은 어떻습니까? 리뷰에서 ‘수학적으로 잘 계산된 역동적인 움직임’, ‘정제되고 정돈된 무대’라는 내용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요.

원래 제가 자기반성을 잘하는 성격이에요(웃음). 훌륭한 댄서의 비주얼도 아니고, 스스로 예술가라고 지칭할만한 캐릭터를 갖추지도 않은 것 같아요. 예술가, 무용가라고 하기에는 감정에 동요되지 않는 다분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도 중견 무용가라는 호칭으로 솔로무대에 서고 작품을 만들고 있더라고요. 아직 왜 무용을 하고 있을까, 용기가 부족해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이 가장 나다운 걸까 고민할 때가 많았죠. 나름대로 합리화한 결론이라면 나에게 춤은 하늘에서 주어진 운명과 같은 것, 그만큼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모든 창작자가 그렇겠지만, 자신의 기질을 담아야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잖아요. 예술가적 자질이 부족하다면 이성적인 기질을 바탕으로 관점과 구성이 논리적이고 수리적인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후에 만든 〈가지마세요〉나 〈반갑습니까〉 등은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에요. 결과물은 제가 원하는 만큼 방법론에서 치밀하거나 개념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그런 회의감에 만들어진 작품이 2010년에 초연, 지난해 재연한 〈아모레 아모레 미오〉였습니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춤이라고 하는 형태, 춤의 어휘를 배제한 움직임으로 풀어냈어요. 아직도 끊임없이 나다운 작품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씀드려야겠네요.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요즘 융복합, 탈장르, 인터랙티브 등의 용어가 춤 무대를 감싸면서 아이디어로 응집된 퍼포먼스 위주의 작품이 자주 눈에 띕니다. 반면 선생님의 작품은 특별한 테크닉을 보여주지 않아도 움직임 자체에 충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컨템포러리 댄스의 경계는 희미해졌어요. 근본적으로 우리가 춤을 통해 이야기할 때 다른 장르 혹은 분야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이냐는 질문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춤 작품에서는 ‘몸’에 대해 창작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평소 생각하시는 안무의 주안점은 무엇인가요?

제 작품의 중심은 움직임이죠. 움직임을 절제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런데도 상당히 많은 편이에요. 전체적으로 넓혀 본다면 조형미와 작품이 주는 이미지, 인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작품을 보고 나서 우리는 면면을 기억하기보다 마음속에 잔상을 남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형적인 아름다움이나 이미지 색채를 중시하게 된 것 같아요. 다행히도 제 안에 시각 쪽의 감각 혹은 기호가 내재하여 있었던 것 같고요. 이미지 구성을 위해서 오브제를 자주 활용하곤 합니다. 다만 간판처럼 사용하지는 말자, 그리고 더 이상의 활용이 안 될 때까지 극한대로 사용하자는 생각이에요. 오브제로 파생되어 나온 몸의 움직임에서부터 관객들의 마음에 남겨질 인상까지 연계 지점을 최대한 넓히고 충실히 표현하려고 하죠.

동시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무용인을 양성하고 계십니다. 안무법이 교수법으로 연결되고 있는지, 어떤 교육관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작업방식이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제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절대로 나처럼 하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어요. 이미 저와 제자들 사이에는 20년 이상의 시간차가 있는데 컨템포러리 댄스를 하고 있는 제자들이 저를 따라 하는 것은 동시대성을 지향하는, 혹은 당대에 만들어지고 생각하는 것보다 한발 앞서 제시해야 하는 예술가로서의 소명의식과 동떨어진 것이죠. 

한국의 도제식 교육에서 대부분 제자는 스승에게 순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제가 지적하는 즉시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수 있고 더 빠르게 성취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험난한 무용계에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할 힘을 기르는 거예요. 나의 성향이나 방식으로 자극하지 않고 오래 걸려도 그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 그렇게 자기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 선정작 <바우> 연습장면 © 황승택

▲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 선정작 <바우> 연습장면 © 황승택

올해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바우〉로 화제를 옮겨 보겠습니다. ‘인사’를 뜻하는 이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목표를 설정하고 안정적인 구조 속에 착실한 과정을 밟는 것이 그동안 저의 창작과정이었어요. 그 결과물은 잘 차려져 있는 밥상, 질서정연한 교과서 혹은 잘 만들어진 생산품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사고방식, 창작의 방법은 전과 많이 다르죠. 내재해있던 것들이 펼쳐지거나 던져지고 예기치 않은 결과물로 드러나면서 창작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어요. 〈바우〉는 이제까지 제가 해왔던 무거운 접근에서 벗어나 주변에서 포착한 것을 가볍게 꺼내 든 작품이에요. 외국 초빙교수들은 한국 학생의 깍듯한 인사예절에 굉장한 흥미를 느끼고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라고까지 말씀하시더군요. 그들에게 이색적인 한국의 예절문화를 다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러나지 않는 겸손한 자세부터 숭배에 가까운 격식의 행위까지 한국 문화에 내재한 다양한 층위의 인사 제스처를 추출해 춤으로 작업해보고 싶었습니다. 

한국 문화의 다양한 인사법이 어떻게 담겨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무가의 입장에서 특기할만한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사란 상대에 대한 마음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서구와 달리 반가운 마음을 한 걸음 물러서서 소극적으로 겸손하게 나타내기도 하고 극도의 존경을 예를 다해 절도 있게 표할 때도 있어요. 블라인드를 연상케 하는 부채와 잔걸음, 멍석을 깔고 절을 올리는 제스처 등 오브제를 활용한 움직임이 작품 곳곳에 드러나 있어요. 음악은 모던테이블 댄스컴퍼니를 이끄는 김재덕 안무가가 맡아주었습니다. 원래 자신의 솔로무대에 사용된 음악인데 이 작품을 위해 정식 의뢰하여 다시 작곡되었어요. 김재덕의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분히 한국적이죠.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대부분의 국내 지원제도는 신진 안무가와 신작을 주목하고 집중적으로 지원해왔습니다. 최근 몇 년간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 무대에도 주로 젊은 안무가의 작품이 올라갔었죠. 한편으로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올해는 선정자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전방위적 활동을 보여주는 중견 안무가로서 이번 팸스초이스 선정에 남다른 소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국제교류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팸스초이스는 작품을 유통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창작자 입장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을 때 안무가의 연령대가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심사에서 주목받는 작품의 작업 방식은 저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세대 차, 작품의 성향 차이가 분명해서 저는 더는 적합한 대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도 저의 작품이 해외에서 어떻게 보일지, 아주 소수라도 제 작품을 인정해 주실지 다시 한 번 냉정한 평가를 받아보고 싶더군요. 심사 때 들었던 생각 때문에 이번 팸스초이스 선정소식은 다른 수상소식보다 몇 배 더 기뻤던 것 같아요. 해외에 내놓아도 좋다는 인정을 받은 것이니까요. 델리게이터의 선택을 받으면 항공료를 지원받을 수 있으므로 고민 없이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점도 기쁩니다. 우리 정서를 담은 기분 좋은 춤 작품으로 〈바우〉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팸스초이스 통해 다수의 해외 공연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실 춤 창작에 그리 긴 시간이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아요. 다른 분들은 정년퇴직 이후에 더 활발하게 활동하시기도 하지만 저는 자기 비판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남은 시간 동안 안무가, 교육자로서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9월에 있을 독일 탄츠메세와 10월 서울아트마켓에서의 〈바우〉, 서울아트마켓과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서 〈Nothing to Say〉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당장은 작품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기고자 프로필

김인아 (춤웹진 기자)
김인아 (춤웹진 기자)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와 춤 현장의 리뷰를 중심으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 서울예대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