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 태도, 환경을 아우르는 새로운 예술 활동

2015.01.19

형식, 태도, 환경을 아우르는 새로운 예술 활동
[동향] 페스티벌 도쿄 한국특집 ‘다원 예술(ダウォン芸術)’


2014 페스티벌 도쿄(Festival/Tokyo)가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도쿄예술극장(東京芸術劇場, Tokyo Metropolitan Art Space)을 비롯해 도쿄 내 극장, 공원, 시나가와(品川駅, しながわえき) 지역 등지에서 열렸다. 페스티벌은 개막작인 피터 브룩(Peter Brook)의 <경악계곡(驚愕の谷)>을 비롯한 15편의 공연 외에 2010년 타계한 크리스토프 슐링엔지에프(Christoph Schlingensief) 영상 특집, ‘예술의 다양성’을 주제로 한 4개의 심포지엄 그리고 ‘공연예술경영을 생각한다.’를 주제로 한 ‘3일 밤의 토크 시리즈’ 등으로 진행되었다. 피터 브룩 외의 해외 작품들로 팔레스타인, 중국, 미얀마 그리고 한국 특집 3편 등이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띤다.

2014 페스티벌 도쿄 공식 포스터

개막작 피터 브룩의 <경악계곡>

2014 페스티벌 도쿄 공식 포스터 개막작 피터 브룩의 <경악계곡>

협업 그리고 아시아

‘경계에서 놀다(境界線上で, あそぶ)‘라는 페스티벌 주제처럼 공연부터 심포지엄까지 이번 페스티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협업’과 ‘아시아’가 아닐까 싶다. 페스티벌 도쿄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공동작업 작품 다섯 편을 직접 제작하여 축제 프로그램으로 소개하였다. 공연예술 제작에서 다양한 분야 창작자들의 공동작업은 항상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통일된 콘셉트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여 그것을 구현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각자 독자적인 창작자로서의 협업을 추구했다. 예를 들어 직접 관람했던 <봄의 제전>에서 모모코 시라가(Momoko Shiraga)는 연출과 안무를, 유코 모리(Yuko Mori)는 무대 디자인을, 야수노 미야우치(Yasuno Miyauchi)는 음악을 각각 담당했는데, 이 셋의 각각의 작업, 그 병렬 자체 혹은 각각의 충돌과 만남을 통해 공연의 콘셉트가 형성되었다. 공연예술에 처음 참여하는 작가도 있었고 그동안 한 부분만을 담당하여 협업해 온 작가도 있지만, 한 사람의 디렉터가 전체를 통제하는 방식과는 분명 다른 시도였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러한 협업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올해 페스티벌 도쿄에 다시 복귀한 이치무라 사치오(Ichimura Sachio) 예술감독은 예술의 다양성에서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창적인 예술가, 예술 작품 하나를 발굴하는 것만큼이나 여러 예술가들의 협업에서 생성되는 다양성에 주목한다. “백 명이 서로 다른 것을 보여주는 것이 다양성이 아니라 백 명이 부딪쳐서 새로운 것을 보여줄 때 그것이 다양성이다.”라는 그의 말은, 페스티벌 도쿄가 협업에 주목하는 이유를 잘 요약해 준다.

한편 올해 페스티벌 도쿄의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시도는 ‘아시아 시리즈’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페스티벌 도쿄의 아시아 시리즈는 최근 공연예술계의 이슈가 되고 있는 아시아와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아시아가 유럽에서 발굴된 아시아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이와 달리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아시아를 구성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오카다 토시키(Okada Toshiki)가 소개되는 방식은 유럽의 아방가르드 신에서 발굴되고 그들이 읽어낸 ‘아시아’를 소개받는 것이라면, 페스티벌 도쿄는 직접적인 네트워크 구축을 시도한다. 아시아 시리즈는 올해 한국 특집에 이어 2015년에는 미얀마, 2016년에는 말레이시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인데, 이러한 선택에서 그동안 유럽이 발굴해 온 아시아와는 다른 신에 대한 고민이 읽혀진다. 또한 아시아 시리즈는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한 섹션으로 공연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인 협업을 시도한다. 페스티벌 도쿄와 페스티벌 봄의 긴밀한 관계도 협업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아시아 시리즈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이승효 페스티벌 봄 예술감독은 페스티벌 도쿄의 아시아 시리즈가 “일본도 아시아의 한 신으로 읽어가는 과정”이었음을 지적하면서 한국 특집의 경우 일본과 한국의 공통된 기반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봄의 제전> ⓒYohta Kataoka

‘아시아 시리즈’ 임지애 <1분 안의 10년> 
ⓒKazuyuki Matsumoto

<봄의 제전> ⓒYohta Kataoka
 
‘아시아 시리즈’ 임지애 <1분 안의 10년> ⓒKazuyuki Matsumoto
 

번역될 수 없는 ‘다원예술ダウォン芸術’

아시아 시리즈 첫 번째 순서였던 한국 특집은 다원예술을 테마로 서현석 <바다로부터(From the Sea)>, 크리에이티브 바키(VaQi)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 임지애 <1분 안의 10년> 세 편의 공연과 “한국 다원예술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마련된 심포지엄으로 구성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원예술’을 한자나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한국어 소리를 그대로 적은 ‘ダウォン芸術’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이승효 한국 특집 프로그래머는 “공연을 소개하는 것만큼이나 ‘다원예술’을 번역되지 않는 독자적인 개념으로 소개하는 것도 이번 한국 특집의 중요한 내용이었다.”라고 말한다. 심포지엄은 좀 더 집중적으로 한국 다원예술의 개념을 소개하고자 하는 기획의 일환이었다.

‘아시아 시리즈’ 서현석 <바다로부터>

‘아시아 시리즈’ 크리에이티브 바키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Tsukasa Aoki

‘아시아 시리즈’ 서현석 <바다로부터>
 
‘아시아 시리즈’ 크리에이티브 바키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Tsukasa Aoki

심포지엄은 한국 특집 세 편의 공연이 마무리되는 11월 16일 5시 크리에이티브 바키와 임지애의 공연이 있었던 도쿄예술극장 내 아틀리에에서 진행되었다. 이승효 한국 특집 프로그래머 겸 페스티벌 봄 예술감독, 방혜진 평론가, 그리고 필자가 발제를 맡았다. 우선, 이승효 예술감독은 한국 다원예술의 전개와 다원예술의 주요한 신으로 페스티벌 봄을 소개했다. 이승효 감독은 한국 다원예술이 새로운 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 정책에서 시작되었고 다원예술 신이 형성되면서 기존의 예술 개념으로 포괄되지 않았던 작업들이 예술 신으로 발굴되고 배치되는 양상에 주목했다. 가령 2014 페스티벌 봄 프로그램이었던 송호준의 <오씨(OSSI) 전자부품 랩(RAP)>은 국가 프로젝트가 아닌 개인 프로젝트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던 송호준의 작업을 인공위성이라는 결과물이 아닌 인공위성을 만들고 인공위성이 발사된 후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반응 등에 주목하였다. 이는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의 다원예술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편 예술에 대한 새로운 이슈를 발생시키는 다원예술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원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예술 정책으로서 다원예술을 소개했다. 2000년대 들어 축제를 중심으로 부상했던 비주류 장르들의 활기, 독립예술제에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로 이어졌던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과 예술 활동,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민간 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되고 기존의 경직된 예술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던 사회적 분위기 등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다원예술소위원회가 탄생했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다원예술소위원회가 시도했던 새로운 예술 활동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예술 지원 정책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반면 방혜진 평론가는 다원예술 신에서 주목하고 있는 예술 활동을 소개하였다. 다원예술에서 드러나고 있는 탈장르/복합 장르 양상,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의 예술 활동 등이 현대 예술, 동시대 예술의 특징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분석하면서 동시대 예술의 관점에서 다원예술의 의의와 가능성을 소개했다.

심포지엄에는 다양한 청중들이 참여하였다. 한국 특집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 평론가, 공연예술 관계자, 기자, 예술행정가, 지원 기관 종사자 등은 발제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국 다원예술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세 작품 모두 관람했던 한 참여자는 세 작품의 서로 다른 양상을 놓고 이 작품들이 어떻게 다원예술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가를 묻는가 하면, 축제 관계자는 페스티벌 봄처럼 다원예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축제에 주로 어떤 관객들이 참여하는가를 질문하기도 했다. 또한 기존 주류 예술에서 소외된 젊은 세대, 비주류 장르, 새로운 예술 활동에 예술 지원 정책이 주목할 수 있었던 사회적 합의에 대한 질문,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 지원에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같은 다원예술 정책과 지원 제도에 대한 세부 내용 질문 등도 있었다.

2014 페스티벌 도쿄 심포지엄

심포지엄 패널로 참가한 연극평론가 김소연

2014 페스티벌 도쿄 심포지엄 심포지엄 패널로 참가한 연극평론가 김소연

세 발제자의 발표에서도 미묘하게 드러나듯이 세 발제자들의 다원예술에 대한 이해와 정의는 완전히 합의된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차이는 발제자들의 발표에서도 강조되었고, 합의될 수 없음, 혹은 느슨한 합의가 다원예술의 특징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세 발제자의 이해와 관점의 차이가 드러났다. 예를 들어 한국 특집으로 소개된 세 작품의 다원예술적 특징에 대해 이승효 감독은 세 작품을 관통하는 형식적 공통점보다 각각이 보여주는 예술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방혜진 평론가는 시각예술 베이스의 서현적 작가와 연극 베이스의 크리에이티브 바키가 기존 장르 신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으며 그러한 주류 예술 신과의 관계에서 이들이 갖는 동시대성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답변했다.

2010년을 전후로 일본 예술계에 간헐적으로 한국 다원예술이 소개되어 왔다면 이번 페스티벌 도쿄 한국 특집은 그 규모가 방대하다 할 수는 없지만 작품과 심포지엄을 통해 구체적인 양상과 담론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소개한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다원예술을 특정한 예술 형식이나 경향이 아니라 작품, 활동, 태도, 환경, 정책 등을 망라하는 다각적 관점에서 소개하고자 한 이승효 프로그래머의 노력은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나 심포지엄에서의 질의응답에서 드러나는 다원예술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예술 현상을 접할 때 작품이나 예술가 중심으로 받아들이던 것과는 다른, 구체적 사회적 맥락과 예술 환경에 대한 관심을 동반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원예술이라는 개념을 떠나 세 편의 공연에 대한 관심도 높았는데, 개별 작품의 경우 다원예술 테마와는 별개로 기존 장르적 관습에서도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편하거나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비평에서도 연극, 무용 등과 같은 기존 장르의 접근을 보여주었다. 서현석의 <바다로부터>,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은 한 편의 연극으로 받아들여지고, 임지애의 <1분 안의 10년>은 무용으로 즐긴다. 그러나 다원예술이라는 테마가 제시되면서 각각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태도’에 좀 더 주목하게 되었던 것 같다.

번역되지 않는 ‘다원예술(ダウォン芸術)’에 대해 일본 관객들, 일본의 공연예술 관계자들의 동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다원예술이 한국 사회, 한국 예술의 맥락과 연결된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페스티벌 도쿄에서 필자는 그러한 맥락을 중시한다는 점이 일본 예술계가 한국 다원예술에 관심을 갖는 이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예술계에서 다원예술에 대한 논의가 소강상태인 점을 비춰볼 때, 대조적인 활기이자 관심이다. 이러한 외부에서의 논의가 다시 한국 예술계에서 다원예술에 대한 논의로 재점화될 수 있을지, 페스티벌 도쿄 한국 특집 다원예술을 보면서 궁금함과 기대가 동시에 내게 다가왔다.

ⓒ페스티벌 도쿄 웹사이트


 

기고자 프로필

김소연_연극평론가
김소연_연극평론가
김소연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는 계간 《연극평론》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상과 무대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공연을 보고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