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예술로서 공연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2012.09.25

현대예술로서 공연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포커스] 2012 아비뇽 페스티벌(The Festival d’Avignon)


2012 아비뇽 페스티벌 메인 포스터

빨간색의 거친 스케치가 눈길을 잡았다. 한 손엔 확성기를 들고 무언가를 외치고 있고, 다른 한 손은 허공을 향해 곧게 치켜들고 있는 그림.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가 그린 2012년 아비뇽 페스티벌의 메인 포스터 이미지였다. 문득 그림 속의 저 남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예술축제의 대명사가 된 아비뇽 페스티벌(The Festival d’Avignon)이 올해로 66회를 맞이했다. 올해는 페스티벌의 창시자 장 빌라르(Jean Vilar)의 탄생1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그 의미를 더한 한 해였다. 메인 홍보물과 동시에 도시 곳곳에는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의 포스터가 있었고 메인 베뉴인 교황청 광장에서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올해 아비뇽에서 관람한 작품들은 유독 현대 예술로서의 공연, 혹은 동시대 공연예술(연극)에 대한 화두를 깊게 지니고 있는 듯 했다. 페스티벌의 참가작들 또한 현재 공연예술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연출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아비뇽 페스티벌 메인 베뉴

공연예술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목 할 때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2004년부터 아비뇽 페스티벌에서는 매년 협력 예술가를 선정하고, 이를 통해 해당년도의 예술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올해의 협력 예술가(Associate artist)는 영국 극단 컴플리시티(Complicite)의 사이먼맥버니(Simon McBurney)였다. 그는 작가, 연출, 배우의 전방위적 활동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의 작품은 배우와 이야기를 작품의 중심에 두면서 다양한 실험과시청각적인 요소(테크놀러지를 포함한)를 공연에 사용하여, 연극적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번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그의 작품 중 단연 돋보인 것은 러시아 작가 미하일 불가고프(Mikhail Bulgakov)의 소설 <마스터 앤 마그리타>(The Master and Margarita)를 연극으로 선보인 것이다. 페스티벌의 메인 베뉴인 있는 교황청에서 공연된 이번 작품은 높고 넓은 교황청을 마치 거대한 스크린으로 이용하며 공연예술의 영상 테크놀러지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었다. 물질화 된 무대 미술을 대치하는 영상이 완벽하게 작품의 이야기와 하나가 되어 유기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순간 영산은 단순한 화면의 투영을 넘어서 새로운 무대장치, 아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주인공이 되었다. 바로 우리가 무대 미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가장 현대적인 기술로 누구보다 연극적인 감동을 관객에게 전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시공간을 이동하며 현실과 환상이 오가는 작품의 원작이 실체화 되어 공연예술로서 상상력과 판타지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교황청과 더불어 대표적 베뉴 중에 하나인 불봉 채석장 (Carrière Boulbon)에서 공연된 작품은 벨기에 안무가 시디라르비 세르카위(SidiLarbi Cherkaoui)의 신작 <퍼즐>(Puzzle) 이었다. 그간 그의 작품은 다문화적인 요소를 보여왔는데, <퍼즐> 또한 아시아적 요소 (특히 일본과 한국, 참고로 한국 부채춤에 안무 동작으로 나온다)를 많이 작품 속에 녹여내었다. 그러나 감성적이고 섬세한 그의 춤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이미 더할 수 없이 커져버린 규모를 감당해야 하는 공연에 조금은 아쉬움을 느꼇을 수도 있을 듯 하다. 극장의 규모가 워낙 크기도 하지만, 관객이 클라이맥스를 착각할 정도의 몇 번의 끊김은 전체적인 공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함을 반증하는 듯 했다. 그러나 제목에 걸맞게 공간 및 동선을 구조화하는 데는 스펙터클한 안무와 연출은 굉장한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한다. <퍼즐>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공연을 프랑스 아르떼 (http://www.arte.tv/fr)를 통해 공연 기간 중 방송을 실시간으로 방영했다는 점이다. 공연이 현장예술로의 공간성을 뛰어 넘어 현대화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젠 거의 모든 공연예서 멀티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이제 실험이라는 단어를 넘어서 무대 미술의 필수 요소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실험이라 불렀던 것은 더 이상 실험이나, 아방가르드가 아닌 현실이 되어 또 다른 단계로 공연예술의 차원이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아비뇽 페스티벌 거리극

표현은 새롭게, 모두와 함께, 그러나 본질은 더욱 명확하게!

독일 샤우비네의 토마스 오스터마이어(Thomas Ostermeier/ Schaubühne Berlin)가 아비뇽에서 신작을 선보였다. 바로 입센의 <민중의 적> (Ein Volksfeind). 아비뇽에서 도그의 명성을 자랑하듯 티켓 구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쉽지 않은 예매부터 현장 티켓 구매를 위한 행렬 또한 가장 길게 느껴지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민중의 적>의 원작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지금 현재를 배경으로 작품을 풀어낸다. 모던하고 세련된 무대와 대중문화의 코드를 적재적소에 영민하게 녹여내는 그의 연출법은 이번 작품에서도 유효하다. 다시 한번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젊은 관객과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관객에게 발언권을 넘기면서 무대를 논쟁의 장소로 만든 것이다. 주인공인 스톡만이 연설이 끝나자, 마이크는 바로 객석으로 전달된다. 입센의 공연이 이분법적인 구조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면, 이번 작품은 관객의 적극적인 발언을 통해 정치적인 것은 곧 개인적인 관점에서 출발한다는 토론을 통해 보여주며, 다시금 공론, 토론의 장으로 연극의 기능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 외에도 로모 루나와 미구엘 모레이라 (Romeu Runa & Miguel Moreira)의 <올드킹> (Old King), 크리스토프 오노레 (Christophe Honoré)의 누보 로망 , 에릭 비그너 (Éric Vigner)가 프로듀싱한 아카데미 (L’Académie) 등을 비롯 10편의 IN 공연과 10편의 OFF공연을 관람했다. 페스티벌의 전체를 관람한 것이 아닌 제한적인 관람이었기에 인상에 남는 몇 편으로 올해의 아비뇽 페스티벌을 논하기엔 제한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IN 공연들을 본 뒤 몇 가지의 키워드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물론 공연마다 각기 다른 성격과 표현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대성, 멀티미디어, 장르융합, 콘셉셔널, 새로운 형식, 탈정치화, 젊은 관객, 개인의 성찰….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표현과 세계들이 펼쳐지는 공연 속에서 느껴지는 것들은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 다시 태어나기 위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하는 아프라삭스(abraxas)처럼, 현재 우리의 공연예술도 그런 과정을 맞이하기 위한 본격적인 시작이 이번 페스티벌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쟁쟁한 대가들이 차려놓은 진수성찬 속에는 “현대 예술로서 공연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고 느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표현방식으로 관객과 나눌 것인가? 헤아릴 수 없는 매체와 다변화되는 가치의 범람 속에서 연극이, 공연예술이 21세기에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지극히 존재론적인 고민의 반복되는 시간이었다. 탈장르화, 탈경계적 시도는 앞으로 더욱 활발해 질것이다. 그리고 연극은 동시에 좀더 적극적으로 사회와 정치에 대한 발언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프랑스의 작은 시골 동네, 아비뇽 골목에서 만나 것은 그렇게도 큰 질문 이었다. 그래서 일까? 작품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좋은 공연을 만났을 때의 행복함과 더불어 동시에 우울함을 함께 맛본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연극 기원을 본질을 생각해 봐야겠다.

아비뇽 페스티벌 거리극

기고자 프로필

이수현_국립극단 프로듀서
이수현_국립극단 프로듀서

이수현은 현재 (재)국립극단의 프로듀서로 재직중이다. 그간 (주)이다 엔터테인먼트, 여유作, 두산아트센터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새로운 작품의 개발 및 제작시스템 구축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