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려 하는지를 명확히!

2011.09.20
왜 가려 하는지를 명확히!
[포커스] 2011 아비뇽 오프 참가사례

아비뇽페스티벌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극축제이다. 전 세계 공연예술단체들이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실험해보고 국제적 상품성을 타진 해보는 장으로 자리매김한 아비뇽페스티벌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비뇽페스티벌이 가진 국제적 아트마켓으로서의 기능이 점차 확대·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국내의 많은 공연예술단체들이 아비뇽페스티벌을 해외진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참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해외진출의 실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철저한 준비가 요구되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필자는 2011년 아비뇽페스티벌 오프에 참가하고 돌아온 <사천가>(판소리만들기 자)와 <추격자>(극단 포차)와의 인터뷰를 통해 준비과정과 공연 그리고 홍보·마케팅 등 현장의 생생한 경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아비뇽페스티벌 오프에 대한 시각을 넓혀보고자 한다.

아비뇽 버전의 대사와 자막
두 단체가 강조하는 것은 기획단계의 목적성과 준비단계의 철저성이었다. 아비뇽페스티벌의 인(in)은 축제의 공식초청을 받은 작품들로 구성되고 오프(off)는 현지 극장의 초청을 받은 작품과 자율참가작으로 이루어진다. 극장으로부터 초청제의를 받았을 때 두 단체 모두 신중하게 참가여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극단 포차의 경우 기획단계부터 철저하게 해외진출을 위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비뇽축제에서는 낯선 넌버벌 퍼포먼스라는 우려가 있었고 <사천가>는 이미 해외에서의 인지도가 확보된 상태라서 참여를 망설였다고 한다. 판소리만들기 자 대표는 "왜 아비뇽에 가야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설정이 중요했다"고 하면서 장기공연을 통한 작품의 완성도 제고와 배우들의 성장을 위해 축제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축제는 낯선 사람들과 소통하는 장이기 때문에 유연하고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사전준비를 아무리 철저히 했어도 현지 상황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무대장치를 여러 단체들과 공유하는 데서 오는 변수도 있지만 대본을 수정해야하는 변수도 생긴다. <사천가>의 경우 2시간 30분가량의 원작을 극장 측의 요구로 한 시간으로 줄여서 갔는데, 극장이 제작한 프로그램북에 공연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나와 있어 공연을 다시 1시간 20분으로 늘여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연초기, 관객들의 반응을 모니터링 하면서 현지 상황에 맞게 대본을 수정·보완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극단 포차는, "감각적 국내 관객에 비해 감성적 프랑스 관객들은 반응이 느리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첫 공연 이후 팀 회의를 거쳐 대책을 마련, 극의 흐름이 흐트러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작품의 템포를 조절하는 시도를 하였다. 현지 관객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그들의 특성을 파악해나가면서 매회 공연마다 작품을 수정해 공연하였다."고 이야기한다.

연극은 텍스트에 기반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자막의 중요성은 모든 참가팀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사천가>의 경우, 프랑스 문화를 대표하는 와인, 아비뇽을 돌아 흐르는 론강 등을 소재로한 현지화된 대사와 자막을 제공하면서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큰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추격자> 역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트로와 클로징 개념의 프랑스어 자막을 별도로 제작했다. 자막으로 사전에 설명된 극의 내용과 배우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어우러져서 일본 '망가'(manga, 만화)를 보는 듯 하다며 관객들과 언론이 열띤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에서 일본 망가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이처럼 문화와 지역적 상황에 맞춰 현지화된 자막은 관객과 좀 더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가능하다.


판소리만들기 자의 거리홍보 모습
극단 포차의 거리홍보 모습

포스터보다 거리공연이 효과적
홍보에서는 현지 파트너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극장의 초청을 받았을 때는 극장의 홍보·마케팅 자료(리플릿, 포스터 등)나 극장이 가진 주요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극장 감독과 친분이 있는 해외의 축제감독이나, 여러 지방의 극장장, 프로모터 등에게 노출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홍보의 문제는 언제든 발생한다. 극단 포차의 경우 베르브 앵카르네 극장이 초청 당시 약속했던 홍보전문가 인력지원이 현지사정상 이뤄지지 않았고, 판소리만들기 자는 홍보를 전적으로 극장에 맡겨 놓았다가 길거리 홍보 과정에서 홍보물의 필요성을 느껴서 뒤늦게 자체제작하여 배포했다고 한다.

워낙 많은 공연이 있다 보니 포스터는 그저 하나의 거대한 종이더미일 뿐 홍보의 효과가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거리공연을 하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유리한데, 이때 유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거리에는 그만큼 많은 홍보활동이 벌어지기 때문에 장소선정의 문제가 있고, 길거리 공연으로 수익을 올리는 극단과의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거리공연은 홍보효과가 크기 때문에 '방법'을 고민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이 극단 포차의 경험담이다.



참가목적에 맞는 재정계획
수익 문제는 가장 민감하고 현실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은 서두에 언급했던 목적성과 연결된다. 판소리만들기 자와 극단 포차 모두 돈을 벌려는 환상을 가지고 아비뇽페스티벌 오프에 참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실 극장초청의 형식으로 공연을 하더라도 짧은 기간에 수익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공연수입을 극장과 5:5로 나누고 교통비와 숙식비 등 모든 경비를 극단에서 부담해야 하는 구조에서 아비뇽 오프 참가는 경제적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판소리 만들기 자의 대표는 진출목적과 재정부담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본 다음 진출을 결정하라고 조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비뇽페스티벌 오프 진출을 계획하는 단체는 먼저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고, 손실에 대한 단체 부담을 예측한 다음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아비뇽 오프 축제에 뛰어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극단 포차는 진출목적과 재정 계획을 전략적으로 조율하여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우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배우 세 명과 스태프 세 명으로 최소인원의 공연팀을 꾸렸고, 여비를 절감하기 위한 각종 노력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극장수입 이외에 공연실황을 담은 DVD 판매와 프랑스 공영방송 출연료를 부가적으로 벌어들여서 적자를 면할 수 있었다. 공연 이외에 다각적인 수익사업에 대한 기획력이 있다면 경제적 희생 없이 아비뇽 오프에 참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단체들은 공연현장과 아비뇽 현지의 일상생활에서 겪는 언어 소통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프랑스는 프랑스어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한 나라이다. 그래서 영어 사용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고 이로 인해 영어에 의존해 아비뇽에 들어온 외국단체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생기곤 한다. 언어 문제에 대하여 극단 포차는, "아비뇽페스티벌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시장이다. 축제의 모든 정보가 불어로만 제공되며, 현지 생활에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극장 스태프, 프로모터와 논의를 할 때에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서 커다란 어려움이 없었다. 단, 극장과 초청단체들과의 전체 미팅시 모든 회의가 불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불어 학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외국어를 새로 배운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현지 코디네이터나 전문홍보담당자를 고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비뇽은 하나의 선택지일 뿐

극단 포차 <추격자>
판소리만들기 자 <사천가>

2011년 아비뇽페스티벌 오프에 참가하고 돌아온 두 극단의 자체 평가와 진출을 준비하는 단체들을 위한 조언을 들어보자.

먼저 극단 포차는 이번 아비뇽 오프 진출 성과에 만족한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추격자>는 제작 초기부터 해외 시장과 관객을 목표로 두고 만든 작품인데, 이번 아비뇽 오프 참가 이후 프랑스와 유럽시장 진출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성과이다." 판소리만들기 자 역시 이번 축제 참가의 성과에 매우 만족하였으나, <사천가>는 이미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인 이상, 더 이상 홍보를 위한 페스티벌 참가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손실을 감안하면서까지 자본을 투자하여 완성도 낮고 짧은 쇼케이스를 하는 것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사천가>는 이제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추었으며, 국내외 공연계 관계자들과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접촉할 기회가 있다. 이제는 해외에서 적절한 대우를 받고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일 단계"라고 말한다. 분명 해외의 축제나 마켓은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단체들이 스스로의 역량과 단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각 축제나 마켓의 특성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하여, 자신에게 맞는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두 단체는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이번 2011년 아비뇽페스티벌 오프에서 우리 단체들의 선전은 이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비뇽페스티벌 오프를 통해 작품성과 예술성 등에서 인지도를 높인 한국의 작품들이 아비뇽페스티벌 인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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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프로필

장현주 _ 컬처 디자이너
장현주 _ 컬처 디자이너

장현주는 서울대 불문과 석사를 마치고, 파리 3대학에서 DEA와 박사학위(연극 전공)를 취득하였다. 2004년부터 공연예술 분야에 종사하며 다수의 연극, 뮤지컬을 기획하였고,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 차장을 거쳐, 공연기획/제작사 (주)문화바구니의 기획이사를 역임하였다. 현재 대학에서 예술경영, 공연예술 및 문화콘텐츠 기획과 마케팅 등에 관련된 강의를 하며, 컬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