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 도시와 연극

2011.08.01
세속 도시와 연극
[포커스] 아비뇽페스티벌 오프를 다녀와서

세상에 아비뇽을 닮은 도시는 없어 보인다. 아비뇽은 비행장도 있고, TGV라는 고속 기차역도 있고, 일반 기차역도 있지만, 도시가 아니라 한적한, 조금 큰, 중세 마을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아비뇽은 하나의 극장이고, 동시에 골목과 관객이, 극장과 식당이 한 데 모여 만드는 공연이다. 아비뇽의 구 시가지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바깥에는 론 강이 흐르고 있다. 교황의 유수, 그러니까 교황청이 본향을 잃고, 이곳까지 내몰려진 채 옮겨와 갇혀 있던 곳이다. 그때가 서기 1309-1377년이다. 이 기간을 교황권의 몰락이라고도 하고, 종교에 관한 인문적 사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시기라고도 한다. 지금, 이곳, 프랑스 오지에 속하는 아비뇽은 세속 마을이다. 아비뇽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이다. 종교의 허무와 세속의 쾌락이 공존한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도 하고, 연극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연극으로서는 생전에 이런 곳에 살았나 싶은, 옛날과 같은 곳이기도 할 터이다. 아비뇽 기차역에 내리면, 마주 보는 길을 따라 걷게 되어 있다. 아비뇽에서 가진 넓은 이 길은 연극으로 들어가는, 은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걷는 이들을 신중하게 이끄는 공명의 길이다. 일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길, 인간의 동물적 시간을 박탈하는 길, 예측할 수 없는 연극의 시간 속으로 이끄는 길이다. 죽음에서 부활로, 겨울에서 봄으로 다시 오는 전설의 야누스는 그래서 1월이지만, 아비뇽에서는 7월이다. 연극이 인간의 세상으로 매번 오는, 연극이 인간 속에서, 혹은 인간이 연극 속에서 분리되지 않는 한 여름 밤의 꿈이 이곳에 있었다.

아비뇽페스티벌, 꼭 65년 전부터의 일이다. 이곳에서 한여름, 한 달 동안 내내 연극이 판을 치고 있다. 온 마을이 연극공연으로, 연극 보는 사람들로, 연극에 관한 정책과 시장의 활로를 위한 토론으로, 수많은 포스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축제기간 동안 아비뇽 사람들 대부분은 연극하는 이들, 관객들에게 집을 빌려주고, 다른 곳으로 가서 바캉스를 지낼 터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들은 이렇게 한 달을 벌어 일 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세속마을 치고는 가장 실속 있고, 멋진 곳이다. 나라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한 달 동안 연극을 부리나케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아비뇽 사람들은 연극을 인질로 삼아 자기 자신과 집들을, 도시를 짧게 비운 다음에 길게 채운다는 사실이다. 연극의 정치경제학이 여기에 있다. 아비뇽 사람들이 연극과 함께 가는 동반자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교황과 프랑스의 중심종교인 가톨릭이 썰물처럼 떠난 자리에 연극이 밀물로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종교의 역설이고, 연극의 영광이다. 많은 공연장은 대부분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용도폐기 된 오래된 교회 건물이다. 아비뇽에서 성스러운 교황과 교회는 세속의 연극과 극장으로 탈바꿈되었다. 유럽에 이성과 민주주의가 보편화적으로 실현되었다고 해도 이천년 교회가 이처럼 시시하게 보이는 풍경은 가치의 몰락으로 볼 수도 있다. 극장이 된 천년 교회 건물에서 탄식이 새어나온다. 그곳에서 본 공연들은 권위 있는 종교의 신음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교회 무대에 서있던 배우들의 목소리는 낮았다. 아비뇽은 세속 도시의 즐거움이 보장된, 한여름 밤을 위한 마을이 되었다. 종교가 아니라 오로지 연극으로만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마을, 도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에서 연극이 종교처럼 구제와 정화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만 종교의 운명을 보고, 연극의 실용을 성찰할 수는 있었다. 아비뇽페스티벌만 보고, '연극 만세'라고 두 손을 치켜 올리는 일은 과장이고, 억지이고, 무리일 터이다. 전 세계에서 꾸역꾸역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은 관객 이전에 집을 나와서 세상을 여행하는 방랑자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연극은 집을 나와 떠도는 이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자유이며, 여행하는 이들이 세상을 보는 눈과 같다는 것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극장 바깥은 길과 광장을 막론하고 모두 만남과 담론과 사교의 자리였다. 극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아고라가 저 건너편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이들이 집을 나와, 떠돌다 이곳에 와서 연극을 보고, 음식과 술을 먹으며 춤을 추고, 거기에 말의 빛으로 깊은 밤의 어둠 속에 빠진다. 극장에는 언제나 관객들이 듣고 싶어 했던 말들이 있었다. 옛 교회에서처럼.



아비뇽 교황청 공연장
 
 

아비뇽 오프라는 연극 시장
아비뇽은 짧은 기간 동안 온갖 연극을 창출하고, 대량 소비하는 몇 안 되는 곳임에 틀림없다. 오래 전, 무한과 외포를 자랑했던 중세 교황의 성지였던 덕분이라서? 아니면 종교의 성지가 세속의 극장으로 바뀌고 너무나 인간적인 마을로 탈바꿈된 곳이라서? 아니면 14세기 종교가 지녔던 철학적 정신과 정치적 권력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그것과 무관한 교양과 오락과 같은 연극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은 아비뇽에 있는 동안 계속되었다. 구 종교는 신 연극을 질투하지도 않았다. 교황의 감옥과 같았던 곳이 연극으로 공공의 앎과 즐거움의 교류장소로 변모하게 된 것은 우리들에게도 좋은 공부거리임에 틀림없다. 여기에는 프랑스 문화정책의 중심인 연극의 지방자치(décentralisation)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처럼 아비뇽페스티벌의 핵심 주제였던 장 빌라(Jean Villar)의 민중연극론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페스티벌은 인(in)과 오프(off)로 구분되는데, 오프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연극들이 중심이다. 100석 정도의 작은 소극장이 즐비했는데, 대부분 아침 10시부터 저녁 11시까지 7-10개 작품을 거푸 공연하고 있었다. 한국작품으로 말없이 동작만으로 관객들을 대하는 극단 포차의 <추격자>, 판소리와 브레히트를 엮은 판소리만들기 자의 <사천가>도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한불 합작 형식인 <코뿔소>도 있었다. 처음으로 주불 파리 한국문화원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마련한 한국공연예술 홍보관(Espace Coree)도 문을 열어 관객들에게 현대 한국연극에 대한 많은 공연들, 마케팅에 관한 정보들을 주었고, 이 주제에 관한 발제도 있었다.



 
 
 
아비뇽페스티벌 오프는 철저하게 연극시장 노릇을 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한편으로 못마땅했고, 다른 한편으로 거역할 수 없는 연극시장의 논리로 이해해야 했다. 반성하는 지식은 언제나 승자독식의 실용에 뒤지는 법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연극은 미학, 예술, 철학, 인문의 경계를 넘어서 시장의 상품이라는 것을 아비뇽이라는 세속 도시에서 즐겁게 혹은 조금 쓸쓸하게, 그것도 한 여름 뙤약볕에서 땀 흘리며 보아야 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오프 극장을 지닌 경영자들을 만나 계약하려는 한국의 극단들, 초청작품을 선정하려는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연극제 담당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한국연극이 서울 혹은 한반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업연극은 언제나 창작 이전에 의도가 선행된다.

연극의 순정
그렇다면 문제는 아비뇽에 순정한 연극은 있는가이다.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아비뇽페스티벌은 무엇인가? 페스티벌 오프에 초청받으면 좋은 것은 계약대로 출연료를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듣기로는 반반씩 나눈다고 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공연이 가능한 작품을 선정해서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 극단들의 참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페스티벌에(초청, 계약 등의 형식으로) 참여함으로써 한국연극 안에서 극단의 위상을 향상시킬 수도 있겠다. 위험한 예상인데, 이를 위해서 연극이, 한국연극이 갈피를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프라는 곳은, 극장(프랑스 기획자를 포함하여)의 위력이 이곳에서 공연하고자 하는 한국 극단의 순정을 훨씬 능가하고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극의 순정과 경영 사이의 길항 혹은 순항이다. 아비뇽은 순정보다는 경영이 앞서는 세속의 진영이다. 구 교황처럼 연극의 순정도 빛바랜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령 길거리 포스터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런 구절들은 충분히 매혹적이고, 연극방랑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연기란 물러가는 파도와 같은 것"(Jouer, c'est comme une vague qui se retire), 그리고 세속도시의 즐거움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술집의 이름이 '자기 앞의 와인'(Le vin devant soi)…. 이 모든 기억들을 한 테로 모으면, 교황이 떠난 아비뇽은 한 여름, 연극으로 시민전쟁이 아닌 문화산업전쟁을 치르고 있다. 사족으로, 아비뇽 위 작은 도시인 림(Nimes)은 재즈음악으로, 아래인 아를르(Arles)는 사진으로, 그 다음 몽펠리에(Montpellier)는 춤으로 각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즐겁게, 가볍게, 그러나 꼼꼼하게 무서운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아비뇽 페스티벌 오프 2011(Festival d'Avignon Off 2011)

아비뇽페스티벌 오프는 아비뇽페스티벌 인(in)의 기득권과 예술적 엄숙주의로부터 신진 연극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린지페스티벌의 축제정신에 동감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아비뇽페스티벌 오프가 창설되었다. 아비뇽페스티벌 오프는 미래 아비뇽페스티벌 인(in)의 새로운 주역을 배출하는 창고로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다.

축제의 행정위원회 기능을 하는 AF&C(Avignon Festival & Compagnies)협회는 극장과 공연단체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로서 17명의 멤버로 구성된다. AF&C 협회는 축제 웹사이트 운영, 프로그램북 발행, 축제기간 중 안내소 운영, 토론회, 퍼레이드, 라운드테이블 등의 부대행사를 개최한다. 아비뇽시를 비롯하여 음악, 연극 등 장르별 예술단체를 대표하는 각 협회와, 공연기관 및 단체 등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언론매체와 기업 등과 협력구조를 맺고 있다.

7월 8일부터 31일까지 개최된 2011 아비뇽페스티벌 오프에는 프랑스를 포함한 약 26개국에서 969개 공연단체, 1,143작품, 6,000여명의 아티스트가 116개의 극장(공간)에서 공연을 올렸다. 자유참가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오프의 해외공연은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호주 등 아시아 오세아니아권역에서 18개 단체, 유럽권역에서 67개 단체, 중동·아프리카 권역에서 5개 단체, 북미·중남미 권역에서 6개 단체가 참가했다.

아시아권의 경우 자국 정부의 지원을 통해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단체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대만은 2007년부터 아비뇽오프 기간 동안 대만정부가 공연장을 대관하고 항공비 등을 일부 지원하고 있으며, 매년 4개~6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2011년 베이징프린지페스티벌과 아비뇽페스티벌 오프가 파트너십을 맺어 이번 축제에 6개의 중국 현대공연작품이 참가했고, 오는 9월에는 프랑스 공연단체들이 베이징프린지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극단 노뜰의 <동방의 햄릿>(2001,2002), 극단 초인의 <기차>(2005, 2006), <선녀와 나무꾼>(2007, 2008) 등에 이어 올해 <사천가> <코뿔소> <추격자> 세 공연이 아비뇽 오프에 참가했다. 또한, 예술경영지원센터와 주불한국문화원이 협력하여 7월 6일부터 26일까지 21일간 아비뇽 시내에 위치한 성당 생미셸 채플(Eglise des Celestins)에서 한국공연예술홍보관을 운영, 한국공연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한국연극 강연회, 한국희곡 낭독회, 리셉션, 콘서트, 전시, 영상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정리 _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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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프로필

안치운 _ 연극평론가, 호서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안치운 _ 연극평론가, 호서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안치운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연극학과를 수료하고 프랑스 국립 파리 제3대학에서 연극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극, 반연극, 비연극,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연구]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현재 호서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한국연극학회 이사를 겸임하고 있다.